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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유니콘27 0 3 02.0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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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유니콘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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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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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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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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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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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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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나는 피라미드 앞에 서 있었다. 사실 피라미드는 보통명사로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는 모든 건축물을 통칭할 수 있지만, 피라미드! 하면 이 날 내 앞에 있는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일 정도로 대피라미드는 압도적이다. 무엇보다 세계7대 불가사의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인데, 더욱 어이가 없는 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 이 대피라미드인데 나중에 지어진 6개는 모두 소실되고 가장 먼저(그러니까 가장 오래 된) 건축한 건축물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내가 피라미드에 매료된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초등학생 때이던가, 이집트에는 고대의 파라오가 자기 무덤으로 지은 사각뿔 형태의 건축물이 있고 그 크기가 엄청나다, 는 걸 접하고는 와 정말 대단하다 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피상적으로만 알던 피라미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건 역사를 좋아하던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레이엄 핸콕이 신의 지문이라는 책을 써서 그 번역판이 한국에도 나온다는 광고를 볼때부터 시작되었다. 출판일을 손꼽아 기다리다가-이렇게 쓰면 책을 엄청 읽은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고 소위 말하는 문학소년과는 거리가 멀었지만-한달음에 광화문의 교보문고까지 가서 책을 사오고, 흠뻑, 그야말로 흠뻑 그의 책에 빠져들었다. 당시야 고2의 애송이이니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을 읽을 능력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거의 가감없이 수용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레이엄 핸콕을 두고 허망한 유사역사를 쫓는 사기꾼 정도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그의 주장이 논리비약이나 어거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내가 공감하는 건 그가 제기하는 의문들에 대해서다. 뭐 그런 그렇고.​전날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길에 엄청난 차 사고를 겪는 고초가 있었지만, 생명 무사히 잠에서 깼다. 위스키를 퍼마신 데다가 이 날 일곱시 반에 가이드가 차량과 함께 호텔앞에 오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까지 먹고 나가야 하니 더 잘 수도 없고 해서 여섯시 이십분에 일어났다. ​​​이 호텔의 루프탑에서는 아침을 주는데, 남쪽부터 시작한 내 이집트 여행에서 가장 북쪽에 있어서 그런가 날씨가 쌀쌀했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조식을 먹는 동안에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바로 이 풍경이었다. 오른쪽부터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밥은 뒷전이고(퀄리티도 별로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에도 그리던 이 곳을 드디어 내 두 눈, 육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신의 지문을 읽으며 가보고 싶었던 게 멕시코 치첸 이트사의 쿠쿨칸 피라미드와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달/태양의 피라미드, 그리고 바로 이 기자의 대피라미드였는데(당연히 1순위는 대피라미드) 멕시코는 미국에 있을 때 모두 돌아봤고 드디어 여기에 오게 된 것이다, 신의 지문을 읽고 대피라미드에 흠뻑 빠진 다음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아직 위스키가 덜 깨서(어제의 차 사고 때문에 긴장을 풀려고 평소보다 더 퍼마셨기 때문이다)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일곱시 반에 호텔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이드와 만났다. 검은색 히잡을 쓴 가이드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집트학 전공자로, 가끔 아르바이트로 가이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뒷좌석에 앉자 피라미드로 가는 십분 정도의 시간동안(피라미드 앞에 있는 호텔이지만 길이 빙 돌아서 유적지 입구까지 가게 되어 있다) 브리핑을 해준다고 하며 종이 한 장을 꺼내는데, 그게 바로 손으로 쓴(이 전날 밤에 쓴 것으로 보이는) 피라미드의 역사였다. 얼핏 보니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스네푸르의 굴절/붉은 피라미드-대피라미드-카프레 피라미드-멘카우레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 간단한 설명을 영어로 써 놓았다. 그러면서 손으로 계단식 피라미드부터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하려고 하길래, 역사 매니아답게 아, 피라미드의 역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미 공부하고 왔고 내가 궁금한 건 이따가 보면서 물어볼게, 마스타바(피라미드 양식 이전 땅을 파고 들어가서 사각형으로 만든 고대 이집트의 무덤양식)에서 갑자기 조세르가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축한 이유는 뭘까, 그런 게 궁금하다고 하니 매우 놀란 표정을 한다. 아마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기자의 피라미드 정도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여행을 올테니 역사 오덕후인 나같은 사람을 많이 겪어보지는 않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디서 공부했냐고 하길래 피라미드를 보러 올 생각을 한 건 오래되었고 겨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오랫동안 못 오다가 이번에 오게 되어서 원래 읽었던 거 말고도 책을 여러권 읽었어, 라고 대답해줬다.​​​아아아아아아아아 피라미드. 기자의 대피라미드라고도 하고 쿠푸의 피라미드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건 진정 인류 문화유산중 최고의 기념비라고 할 만하다. 가장 오래된 인간의 건축물은 아니지만(터키쪽에서 괴베클리 테페를 비롯한 꽤 거대한 스케일의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 발견되었으니), 이 정도 규모의 완성된 형태의 건물로는 대피라미드가 유일하다. 그리고, 이집트가 매력적인 국가인 건 바로 이 대피라미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원전 2560년경 고대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의 파라오 쿠푸가 지었다고 여겨지는데 이 건축물을 대체 어떻게 지었는지도 미스테리고, 무덤(이라고 추정)을 대체 왜 이렇게 크게 지었는지도 미스테리고, 놀라울 만한 정밀도도 미스테리고…하여간 그냥 고고학은 물론 증명이 가능한 과학도 발달할 대로 발달한 지금의 지식과 기술로도 비밀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미스테리의 총체라고 보면 되는 것이 바로 이 대피라미드다. 물론 중요한 건 미스테리인 것이 아니고, 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거대 건축물이 실존한다는 것이고, 나는 바로 앞에서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숱하게 사진과 영상과 글로 접했던 대피라미드를 막상 내 앞에 마주하자,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감동이 온 몸을 격하게 훑고 지나갔다.​​​(위스키에 덜 깬 상태로) 강렬한 유혹에 못 이겨 내 사진을 찍었다. 이집트는 겨울철이 기온이 낮기 때문에-물론 이것도 남부에서 룩소르까지 해당하는 얘기다-여행 하기 좋지만 한가지, 기자는 겨울철에 날씨가 흐린 날이 많다는 게 단점이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만 맑은 날이라는 걸 어디선가 주워 읽었기 때문에 이 전날 ‘내일은 꼭 날이 맑기를~!!’하며 기원을 했는데 냉담한 지 오래인 내가 괘씸해서였는지 하느님은 나에게 맑은 날을 선사해 주지 않았다. 맑았다면 파란 하늘에 사진은 더 이쁘게 나왔겠지만, 흐리다고 해서 피라미드의 매력이 바뀌는 건 아니므로 나는 상관없었다. 흐려서 더욱 그랬겠지만, 바람까지 상당히 불어와서 콧물이 나올 정도여서 내 가이드는 연신 크리넥스로 콧물을 훔쳐야 할 정도였다.​​​대피라미드에 들어가기 전-가이드는 밖에서 설명만 하고 내부는 티켓팅을 한 사람만 들어가는 시스템이다-밖에서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하는데(영어 발음이 심히 심난했다), 대부분 이미 책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어쨌든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는, 내 오랜 의문 중의 하나인 대피라미드의 밑변 둘레와 높이가 왜 2파이의 관계를 가지는 지를 물어봤는데, 내 가이드는 박사과정이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물론 가이드를 원망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아직 아무도 못하기 때문이다. 가장 그럴싸한 건, 원주율인 파이는 그냥 나오는 숫자가 아니기 때문에 대 피라미드의 밑변 둘레와 높이가 2파이의 관계를 가지는 건 의도를 한 비율일 수밖에 없고, 이게 설명이 되려면 그냥 수학적 비율인 원주율을 적용해 놓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 피라미드를 반구의 모형으로 만들었거나이다. 반구의 모형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설명이 그럴듯해 지는데, 그레이엄 핸콕의 설명을 빌리자면 피라미드는 지구 북반구의 모형으로 대피라미드 : 북반구의 비율은 1: 43200(이 비율은 그레이엄 핸콕의 주장이 아니라 팩트다)이 된다. 다시 432*60은 25,920이 되는데, 25,920은 지구의 자전축이 세차운동으로 1회전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논리의 비약인지(특히 60을 곱하는 부분에서 그렇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저것 뿐만 아니라 24시간은 86,400초인데 이게 43,200의 2배이니 반구의 모형으로 만들면서 1:43200의 비율을 구현하면서 의도한 건 오히려 이쪽이 지구의 세차운동 주기설보다는 설득력이 조금 더 있어 보이기는 하다, 물론 고대 이집트인들은 세차운동에 대해 알고 있었던 걸로 보이니 43200이라는 숫자도 세차운동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겠지만. 혹자는 ‘그럼 왜 반구가 아닌 사각뿔로 만들었어?’할지도 모르지만 이 크기-높이만 146.6미터다-로 짓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까운데, 반구의 형태로 어떻게 건설했겠는가? 하여튼, 내 감상과 추측을 말해보라면 반구를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높이와 밑변 둘레를 2파이의 비율로 한 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고, 예쁘게 1 : 43,200으로 피라미드의 밑변 둘레와 지구의 반지름 비율이 맞아 떨어지는 걸 보면 이 43,200도 의도한 숫자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뭐 어쨌든 내 오랜 의문은 영원히 밝히지 못할지도 모른다. 대피라미드에 가까이 다가가자 아랫부분에는 이렇게 원래 피라미드를 덮고 있던 회백색-원래는 흰 색-의 석회암 외장재가 남아 있었다. 그러니 지금 보고 있는 건 사실 피라미드의 속살인 셈인데, 원래는 이 높이 150미터에 육박하는 건물의 겉은 모두 이 백색 석회암으로 만든 Casing stone으로 말끔히 포장되어 있어 햇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건물이었다. 말이 쉬워 외장재이지, 이 높은 건물의 계단식 구조물 위에 표면을 말끔하게 마름질한 케이싱 스톤을 덮는 것 또한 엄청난 난공사였음에 틀림없다. 하여간 대체 어떻게 건축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케이싱 스톤을 아래부터 덮어 씌우면 매끈한 51.5도 각도(이 각도도 2파이의 비율 때문에 나온 각도인데 할 말이 더 많지만 하여간)의 경사면이 되어버려 올라갈 수가 없었을 테니 반드시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순서로 쌓았을 것 같기도 한데…정말 아득할 정도로 뛰어난 공학과 건축술의 집합체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관람자용 입구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워낙 압도적인 건축물인 탓에 그동안 여러곳 여행을 다니며 숱하게 거대하고 엄청난 건축물을 본 나도 이 대피라미드 앞에서는 지금까지 겪어본 건축물에서 느낀 그 어떤 경외심보다도 큰 경외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원래의 입구는 더 위쪽에 있는데 현재 관람객용 입구는 그보다 더 아래쪽에 있고, 계단으로 접근하게 되어 있다. 이 피라미드의 내부에 접근하기 위해 숱한 무슬림들이 도전을 했고, 9세기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인 알 마문이 마구잡이로 피라미드를 훼손해가면서까지 내부에 접근하는 데 성공했지만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뭐 그건 그렇고 지금 관광객용 통로는 도굴꾼들이 뚫은 통로를 이용하는 것이다.​​​위의 사진에 있는 계단을 통과하면 이렇게 허리를 숙여서 들어가야 되는 긴 통로가 나온다. 점점 피라미드의 핵심장소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에 진한 흥분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좁은 통로를 한참 걸어나가면, 피라미드 건축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곳 중의 하나인 대회랑(Grand Gallery)이 나온다. 피라미드는 230만개의 돌을 사용하여 210단을 쌓아 올린 높이150미터, 무게 600만톤(무게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승용차 1대가 대략 1.5톤이니 승용차 400만대의 무게다)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인데, 이 정도 무게를 가진 건축물 내부에 이런 공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공학 측면에서 엄청난 난제였을 것이다. 길이 46미터, 높이가 8.6미터의 장대한 공간인데 폭이 2.1미터 가량이라 계단 앞에 서면 폭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좁아 보인다. 26도의 경사를 가지고 있어 상당히 가파른데 이런 공간이 필요했던 건 이 끝에 있는 왕의 방으로 불리는(석관으로 보이는 것이 있긴 하지만 정확한 용도는 모르니까) 공간으로 접근하기 위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왜 지상의 높이가 아니라 기단부에서 45미터 가량 위에 매장실을 지었는지도 미스테리다. 이 대회랑에는 아주 조금씩 폭이 좁아지는 식으로 단단한 화강암을 이용하여 7단의 벽체를 쌓았는데, 이런 식이 아니라 직선으로 올리면 천장을 지탱하는 들보의 석재가 지나치게 많은 하중을 받게 되었을 테고,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석재의 균열이 발생하고 무너질테니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인데 대체 어찌 계산을 했길래 고대 이집트의 건축학자들은 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냈을까. 이 위로는 100미터에 이르는 석회암 덩어리들이 얹혀 있고, 대회랑은 중력에 의한 엄청난 석회암 석재들의 무게를 이미 4500년간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침 일찍 온 보람이 있어 내가 대회랑에 들어섰을 때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여기에 서서 대회랑을 올려다보며 이 건축물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있자니 감격이 새삼 재삼 밀려왔다.​​​또 특이한 것이, 대회랑은 가운데의 계단은 움푹 들어가 있고 양옆은 그냥 사면으로 되어 있는데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이렇게 홈이 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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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것이다. 한쪽에 27개씩 총 54개의 홈이 파져 있는데 이것의 용도도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목재로 계단을 덮어 높고 매장실을 공사할 때 생긴 건축자재 폐기물들을 아래로 빼는 용도였다거니 뭐니 하는 추측들이 난무하지만 그 어느것 하나 설득력이 없다. 홈만 남아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꽂아두거나 설치했다면 당연히 유기물인 목재라는 추측이 들기는 하지만.​​​그렇게 이 건축물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당도한 왕의 매장실 입구. 입구에는 이 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새긴 낙서가 어지러이 새겨져 있었다. 제4왕조의 피라미드에는 그 어디에도 상형문자 하나 새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원래는 아무런 낙서 없이 매끈하게 폴리싱 된 상태였을텐데, 무식한 것들이 이 인류의 기념비를 더럽혀 놓다니. 입구는 매우 좁아서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쪼그리고 앉아 오리걸음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 입구부터 왕의 매장실까지 가는 사이에 있는 통로에는 커다란 홈이 3개 정도 파져 있는데 이건 떨어지는 문이라고 해서 커다란 석판 3장으로 침입을 방지하는 역할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그렇게 해서 드디어 당도한 왕의 방. 매끈하게 폴리싱 되어 있는 단단한 화강암으로 전체 벽면이 마감되어(있다기보다 화강암으로 쌓았다고 해야겠지) 있는데 이 방에도 여러가지 수학적 코드가 인코딩 되어 있다. 직사각형의 이 방은 길이가 20큐빗(큐빗은 고대 이집트의 길이 단위다), 석관 뒤의 폭이 좁은 면의 대각선 길이가 15큐빗, 폭이 좁은 면의 쪽 위 오른쪽 점에서 반대쪽 폭이 좁은 면의 아래 왼쪽 점까지의 길이가 25큐빗이라 3:4:5, 즉 피타고라스의 직각삼각형이 나온다. 그냥 만든 크기가 아닌 것이다. 대회랑과 달리 직육면체(길이 20큐빗, 폭 10큐빗, 높이는 루트125 큐빗이다)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피타고라스 정리를 넣으려 했다면-벽체를 점점 좁아지게 할 수 없으니 하중의 분산 문제가 가장 골치를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왕의 방 위에는 Relieving Chambers(무게를 경감하는 방)가 다섯개 존재한다. 왕의 방 위에 다섯개의 빈 공간을 만들고 맨 위에는 “ㅅ”자로 석재를 쌓아 하중을 분산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인데 정말 천재적이다. 이 다섯개의 방중 맨 위에 천장을 이루는 석재에서 바로 파라오 쿠푸의 이름이 신성문자로 발견되어, 이 피라미드의 주인을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석연치 않은 것이 저 쿠푸의 이름은 노동자들의 낙서로 추정되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절대 볼 수 없는 위치의 석재에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4왕조 까지는 피라미드 내에 아무런 문자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양식이라면 할 말 없지만, 이런 전대미문의 기념비적 건축물을 짓고 자신을 나타내는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게 아무래도 의문이다. 참고로 피라미드 안에 문자가 쓰이기 시작한 건 5왕조의 파라오인 우나스의 피라미드로, 거기에 쓰인 글을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른다.​​​그리고, 뭔가 마감되지 않은 듯한 왕의 석관이 한 쪽에 뚜껑도 없이 놓여 있다. 여기서 쿠푸의 미이라는 물론 그 어떤 부장품도 발견되지 않았다. 왕가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의 무덤들은 철저히 도굴 당했어도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들이나 깨진 도기 파편이라도 나온 반면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모두 도굴당했을 것이라고도 하지만 애시당초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에 더 수긍이 가는 건 왜일까. 왕들의 계곡 무덤은 드나드는 통로라도 넓은데 이 대피라미드는 여기서 밖으로 나가려면 경사진 대회랑과 그 뒤로 이어지는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하는 긴 통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굳이 파라오의 미라를 밖으로 빼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값나가는 부장품이라면 몰라도. 마감이 다 되지 않은 것도, 뚜껑이 없는 것도 의문인 것이, 피라미드는 완성이 되었고 관은 미완성인 상태에서 쿠푸가 사망했다가 유일한 설명일텐데 이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왕의 방의 입구는 위에서 말했듯 매우 좁은데 왕의 석관보다도 작아 입구로는 석관이 드나들 수 없다. 이 말은 왕의 석관은 피라미드 완성 후에 밖에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를 아래에서부터 건축해 오며 왕의 방의 높이까지 건설이 되는 당시에, 천장을 덮는 석재를 설치하기 전에 여기에 석관을 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600만톤의 건물을 지은 파라오의 석관을 뚜껑도 없이 마무리도 하지 않은 채로 여기에 놔뒀다고? 그리고 공사 감독자가 그걸 그냥 놔뒀다고? 쿠푸 살아생전 완공이 되었다면 당연히 와봤을텐데 이런 대공사를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군주가 이런걸 그냥 눈감아 줄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 이런 뚜껑 없는 빈 관을(미라를 안치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이 방에 놓는 것을 승인했다는 얘기이니…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물론 크기도 형태도 당연히 석관이기 때문에 관이 맞지 않나 싶기는 하지만 이런 이유들로 끊임없이 의문이 생긴다. 그레이엄 핸콕은 피라미드는 수많은 수학적인 코드들과 비밀들을 새겨넣은 채로 건축이 완성되었고, 그 지식을 파헤치고 알아봐 줄 수 있는 문명이 나타나기까지 기다린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식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 의견에는 정말 전적으로 동의한다,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무지렁이인 나부터 이런 수많은 의문들에 휩싸여 이 매혹적인 4500년전의 건물에서 이러고 있으니까. 더욱 기가 막힌 건 한쪽 벽에 환풍구로 불리는 직선의 좁은 통로가 끝없이 뻗어 있는데, 이 통로의 용도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기술이 발달하여 카메라를 설치한 로봇을 집어넣어 탐사를 시작했는데 계속 진행하던 로봇이 다다른 건, 손잡이가 달린 화강암 블럭(문이라고 해야할지)이었다. 정말 끊임없이 현대의 기술과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대피라미드다.​​​그동안 읽고 보고 접해왔던 대피라미드에 대한 지식과 생각과 의문들이 내 머리 속을 마구 헤집어 놓는 통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왕의 방은 숨막힐 정도로 정교하게 맞춰 놓은 화강암 벽체를 가지고 있어 그것 또한 감동적이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역사가 시작되지 못한 시절 이런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니 고대 이집트인의 기술에는 그저 경이로운 마음이 들 뿐이다. 또 하나 의문스러운-이 건물은 의문 투성이니까 새삼스럽지도 않긴 한데-건, 바깥은 콧물이 흐를 정도로 쌀쌀하고 바람이 불면서 매우 건조했는데, 이 내부는 매우 따듯하고(반팔이 필요할 온도) 축축하게 습하다는 것이었다. 땅속도 아니고 대체 어디서 이런 열과 습기가 스며들어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참을 마치 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습식 사우나처럼 느껴졌던 왕의 방을 나와 다시 대회랑을 통해 내려왔다. 허리를 굽혀야 하는 통로로 들어가기 전, 그 통로와 수직으로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통로가 보였다(철문이 달려 있는 부분). 이 통로를 따라 쭉 들어가면 왕비의 방(이라고 부르는)이 나오는데 거기는 왜 막아놨는지 모르겠지만. 왕비의 방이라는 것도 사실 맞지 않는 명칭인 것이, 대피라미드 앞의 작은 크기의 부속 피라미드들이 왕비들에게 바쳐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게 맞다면 대피라미드 내부에 왕의 매장실 말고 왕비의 방을 따로 만들 이유가 없다. 진실이야 어쨌든 여기에도 아래쪽은 정사각형, 위쪽은 평행사변형 모습을 한 홈이 깊게 파여 있고 역시 이것도 아무도 용도를 모르고 있다. 무엇인가를 끼워넣기 위한 건 틀림없는데 대체 무엇을 위해서 였을까. 이 위대한 건축물을 만든 고대 이집트인들이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현대의 우리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면서 대피라미드의 미스테리들을 궁금해하고 추측하고 연구하는 것이니 이건 또 이것대로 효용이 있다고 해야할지.​​​들어갔던 길을 되짚어 나와 밖으로 나왔다. 아래쪽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되기 때문에 오픈 시간에 맞춰서 오는 게 답이다) 곳이 현대의 입구이고, 가운데에 보이는 것이 오리지널 입구이다. 그냥 한눈에 봐도 엄청난 크기의 들보 역할을 하는 2개의 돌이 맞대기 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와 석재 한개의 두께만 해도 엄청나다. 단일 석재를 사용하는 건 오벨리스크도 마찬가지지만 그건 땅에다 바로 세우는 것이니 그렇다 치고, 이걸 건설할 당시에는 크레인이 없는 시절인데 저 높이까지 저 정도(수십톤, 아니 수백톤도 넘어 보이는) 무게의 석재를 대체 어떻게 들어 올렸을까. 고대 건축의 경이 그 자체.​​​가이드가 잠시 피라미드의 둘레를 걸으며 마저 역사의 이런저런 설명(실상 내가 이미 책에서 거의 다 읽은)을 해준다. 한켠으로 들으며 대피라미드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나만의 관심으로 생각이 흘러갔는데, 여기에 쓰인 230만개의 석재는 1개가 평균 2.5톤으로 자동차 2대에 육박하는 무게인데 이걸 230만번 쌓아 올렸다는 얘기이니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겉면을 매끈하게 덮고 있었을 케이싱 스톤들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진 건, 후대를 거치며 이후의 지배자들이 건축물의 석재로 사용하기 위해 꾸준히 빼 간 결과이다. 옛 건축물이 후대 사람들의 채석장이 되버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니 어쩔 수 없지만, 안타깝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 피라미드의 각 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게끔 방위에 정렬되어 있는데, 그리니치 천문대보다도 그 정밀도가 높으니(대략15분의 1도 수준이다) 정말 어떻게 계측을 한 것인지. 나침반으로 측정하면 정북이 아닌 자북을 가리키게 되어 있으니 필연적으로 별을 이용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보긴 하는데 그렇게 측정만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쪽변의 길이가 230미터에 이르는 구조물을 어떻게 이런 정밀도를 가지고 방위에 맞추었는지. 방위는 커녕 230미터 길이라면 그걸 정확한 직선으로 맞춰서 건설하다는 거 자체부터가 문제인데.​​​대피라미드의 앞 장례신전이 있던 곳의 오른쪽 앞에 부속 피라미드들이 세 개 서 있다(원래는 4개였다고 함). 이 중의 하나는 쿠푸의 모후(헤테프헤레스 1세)에게, 나머지는 왕비들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건 아무도 모른다, 기록이 없기 때문. 피라미드들은 왼쪽이 가장 많이 허물어지고, 가운데는 중간, 오른쪽은 가장 원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내 흥미를 더욱 끈 것은 원래 장례신전이 있던 곳 바닥에 있는 검은색 현무암으로 된 포장석이었다. 지금도 엄청난 평탄도를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이 피라미드 앞 장례신전 전체(신전 폭만 해도 50미터에 이르렀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를 뒤덮고 있었을테니, 백색의 석회암으로 매끈하게 덮인 대피라미드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그 아래에는 이 검은색으로 잘 마름질된 현무암 바닥이 있는 장례신전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엄청난 아름다움을 뽐냈을 것이다.​​​부속 피라미드들의 모습. 이 두 개가 쿠푸 왕비들의 피라미드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이어서 카프레의 피라미드. 현재 내부 관람은 안되는 상태이고 크기는 대피라미드에 버금가는데 약간 작다. 얼핏 보면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더 커(높아) 보이는데 그 이유는 기자 고원이 완전히 평평하지 않고 높이차가 있기 때문으로, 카프레의 피라미드가 대피라미드보다 더 높은 지대 위에 서 있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다.​​​크기도 그렇고 밑변과 높이도 거의 대피라미드(147m)에 비슷하다보니 흡사 쌍둥이나 친동생처럼 보이는 카프레의 피라미드(143m). 게다가 이쪽은 맨 위에 원래의 석회암 케이싱 스톤이 남아 있다. 멀리서 봐도 케이싱 스톤의 두께도 엄청나 보이는데 나 참…다른점은, 대피라미드는 밑변 둘레와 높이를 2파이에 맞추기 위해 사면경사가 51.5도에 맞춰져 있는 반면, 카프레의 피라미드는 사면경사가 53.1도로 수학의 코드가 인코딩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대피라미드가 전혀 다른 차원의 미스테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의도적인 수학의 비율들이 적용되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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